빛나는 가야 역사. 다라국을 만나다.

가야의 역사

가야의 유래

가야는 김해의 옛 국명인 ‘가락’에서 기원했습니다. 가락의 어원으로는 ‘개간한 평야’라는 뜻의 남방 잠어 kala유래설, 갓나라(邊國)유래설, 가람(江)유래설, 겨레(族)유래설, ‘韓의 나라’유래설 등이 있는데, 어원적으로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와 변한 및 임나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변한은 4세기 이전 편찬된 중국사서에서 주로 쓰인 용례로 남제서에는 변한에서 가라국으로의 계승관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1~3세기의 변한은 초기가야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임나는 일본서기에 주로 보이는 용례인데, 초기에는 김해를 지칭하다가 말기에는 김해를 포함하여 경상우도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임나는 가야의 다른 이름으로서 가야를 가리키는 지역명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명(혹은 지역명)으로 사용되어 온 가야(加耶)는 흔히 사용되고 있는 ‘고구려·백제·신라’와 같은 당대의 국명은 아니며 중국 역사서에 일관되게 기록되어 있는 ‘가라(加羅)’라는 명칭이 가야 당대에 사용된 것으로서 보다 정확한 역사용어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6가야설의 문제점

가야라고 하면 보통 금관가야, 아라가야와 같은 이른바 ‘6가야’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그러면 정말 가야는 6개의 나라만 있었고, ‘○○가야’라는 나라 이름을 썼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6가야의 이름이 처음 실린 자료는 고려 말에 편찬된 『삼국유사』 5가야 조의 기록입니다. 이를 살펴보면, 실제로는 아라가야(阿羅伽耶), 고령가야(古寧伽耶), 대가야(大伽耶), 성산가야(星山伽耶), 소가야(小伽耶), 금관가야(金官伽耶), 비화가야(非火伽耶) 등의 일곱 가야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런 이름들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가락국 수로왕 건국 신화에 덧붙여진 6란(六卵) 설화에 덧붙여진 것인데, 그 6가야의 개념은 신라 말 고려 초의 혼란기에 후고구려나 후백제와 같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가야` 형태의 국명은, 그들이 소국으로 존재할 당시의 국명이 아니라, 옛날에 가야연맹 중의 하나인 금관국(金官國), 아라국(阿羅國), 고동람국(古冬攬國), 성산국(星山國), 비화국(非火國)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신라 말 고려 초의 명칭입니다.
고려 초의 인식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삼국유사』에 나열된 7개의 가야소국 중에서 일부는 옛날에 실제로 가야연맹체 속에 들어 있던 소국이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게다가 가야 토기의 출토 범위를 통해서 보면 가야연맹체를 이루는 소국의 수는 6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0개국이 넘습니다.

가야사의 범위

가야 관련 문헌을 살펴보면, 가야계 소국명이 10여개 이상 나타나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나오는 예는 김해, 고령, 함안 등 세 지역뿐입니다. 「삼국지」「위서」 동이전 변진조에는 이들 세 지역 이외에 고성, 동래, 밀양 등이 더 확인되고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김해, 고령을 중심으로, 일본서기에는 고령, 함안을 중심으로 가야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와질토기

첫째, 1~3세기 단계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조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진한과 마찬가지로 변한에도 12개 소국이 있고 별도로 제소별읍(諸小別邑)이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대표세력인 구야국과 안야국이 포함되는 다섯 소국이 중심이 되었는데 김해, 동래, 함안, 고성, 밀양 등 낙동강 하류 및 경남해안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었습니다. 문헌상에서의 가야제국의 이 같은 분포는 고고자료에서도 확인됩니다.
즉 이 시기의 특징적인 문화현상으로는 목관묘·목곽묘의 보급, 와질토기의 성행, 철기문화의 보편화, 한군현계· 왜인계 유물의 유입 등을 들 수 있으며, 중심지역으로는 부산, 김해, 창원, 마산, 함안, 고성, 합천 등으로 문헌에 나타난 소국 분포와 거의 일치하며, 예외적으로 창원, 마산, 합천이 부각됩니다.

목곽묘(함안 도항리)둘째, 4세기 단계는 문헌자료로는 일본서기 신공기 49년조와 광개토왕릉비문이 있습니다. 전시기에는 보이지 않던 창녕(비자발)· 창원(탁순) 및 고령(가라)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임나가라(김해)와 안라가 4세기 말~5세기 초 단계의 가야지역의 중심세력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고고자료상으로 볼 때 고식도질토기의 등장에 이어 고총고분과 관련지을 수 있는 대형목곽묘가 등장합니다.
토기의 지역차에 따라 김해· 부산, 함안, 경주권 등 세 지역으로 구분하였는데 함안의 문화적 독자성이 부각된다는 점은 정치적 성장과 함께 이 지역이 5세기 초 고구려남정군의 주공격 대상이 된다는 점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수혈식석곽묘(옥전 M6호분) 셋째, 5~6세기 단계입니다. 문헌자료로는 일본서기 흠명 2· 23년 조와 우륵 12곡의 가야지명이 참고가 됩니다. 흠명기에는 13개의 소국명이 확인되는데, 확실하게 비정되는 곳은 고령· 함안· 합천· 고성· 초계·산청· 창원· 창녕· 영산· 김해 등입니다. 우륵 12곡에서는 고령· 합천· 하동· 사천· 함양· 남원· 초계 등이 나옵니다. 대개 낙동강 중류, 서부경남 및 섬진강 하류 지역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볼 때, 5세기 전반부터는 전대와는 달리 경남내륙과 경남해안 일부지역에서 수혈식석곽묘로 대표되는 고총고분의 출현이 주목됩니다.
금동관(옥전 M6호 복원품)

고령 지산동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등이 대표적이고 이 외에도 동래, 거창, 남원, 함양, 산청, 사천, 창원, 김해 등에 고분군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 시기의 뚜렷한 특징은 전대의 지역색이 고착화하면서 세장형수혈식석곽묘, 대가야계 토기 등 대가야계 문화가 특정지역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령계 문화의 확산은 5세기 중반 이후의 고령 가라국의 정치적 성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가야계 문화가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지역, 즉 고령·합천·산청·거창·남원·임실 등의 지역을 대가야연맹체를 구성하는 주요 국가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입니다.